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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 와트 스토리: 수술, 절망 그리고 소방관

NFL

by IN-N-OUT 2021. 3. 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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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랜덜 스타디움의 내부 어딘가에서, TJ 와트는 복도 벽을 마주보며 눈물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 날은 6년 전 금요일 오후였고 위스콘신 대학의 풋볼 경기장의 공기는 3월 중순의 햇살과 봄 학기의 풋볼 소리들로 가득차있었다. 또 다른 새 시즌이 TJ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날 연습 초반에, 일대일 블라킹 드릴을 하는 도중 왼쪽 무릎이 굽혀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에게는 익숙했던 극심한 고통이 함께 따라왔다. TJ는 빈 라커룸을 향해 터널을 가로질러서 걸어갔고, 복도에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퇴한 소방관이자 세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인 존 와트는 워케샤 카운티의 집에 있었고, 그의 전화기가 울렸을 때는 매디슨에서 I-94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동안 운전하여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아마 연습이 일찍 끝났을 수도 있었겠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존이 전화기를 들자, 그는 그의 막내가 전화선 반대편에서 낙담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아빠, 한 번 더 그렇게 됐어요," TJ가 그에게 말했다. "또 그렇게 됐다고요."

 

존도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했고, TJ에게 일이 잘 풀릴거라고 위로라도 해주려 했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걸 알고 있었다.

 

20살의 TJ는, 촉망받는 레드셔츠 2학년 타이트엔드였고 고등학교 이후 풋볼 경기에 한 게임도 출장하지 못했다. TJ는 똑같은 부상에 시달렸는데 - 슬개골 탈구로, 슬개골이 탈골되어 내측슬개대퇴인대를 찢어버리는 부상 - 15달 동안 4번, 각 무릎에 2번씩이였다. 복도에 앉아서, TJ는 위스콘신에서 건강하게 뛸 수 있을지, 그의 형이자 텍산스의 스타 JJ처럼 NFL에서 뛸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다.

 

전화에서, 존은 사실을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TJ가 또 다른 무릎 수술을 하러 갈때, 존은 TJ가 몇 달 동안 재활하는 대신 풋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더라도, 가족들은 항상 응원한다는 말로 그를 안심시켰다.

 

"제 아버지가 '풋볼을 안하고 싶다면, 안해도 돼.' 라는 말을 꺼냈을 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26살이 된 TJ가 6년 뒤,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잠시만 내가 풋볼을 못할 거라는게 무슨 말이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TJ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어두웠던 날이 어떻게 그의 미래를 바꾸어놓았는지 알 수 있다. 그 날과 그 부상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TJ는 없을 수도 있다 - 올-프로 아웃사이드 라인배커; 스틸러스의 sack 기록과 슈퍼볼 반지를 동시에 쫓고 있는 선수; NFL DPOY 배당률 1위; 그리고 그의 감독 마이크 톰린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 2015년 3월, 금요일 오후에 TJ는 무릎 부상이 자신의 꿈을 빼앗아가지 않게 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네 달 뒤, 그 당시 위스콘신의 아웃사이드 라인배커 코치였던 팀 티베사는 미네소타의 캐빈에서 가족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가 밖으로 나와 호숫가에 있을 때 그의 코칭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화들 중 하나를 받게 된다. 그 전화는 위스콘신 부임 첫 해를 보내고 있었던 폴 크리스트에게서 왔다. 크리스트는 티베사에게 로스터 변경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는 TJ를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로 보내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OK, 괜찮네' 라고 생각했었죠." 티베사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저는 TJ를 몰랐어요. 우리는 봄 학기에도 만난 적이 없었고 뭘 잘하는지도 몰랐어요."

 

크리스트는 그의 맡은 바를 해냈다. TJ의 계속 되는 부상은 그가 뒤로 움직이거나 블라킹할때 발생했다. 크리스트는 TJ를 패스러셔로 옮긴다면 부상을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추가로, 지금에서야 크리스트가 인정하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만약 와트를 팀에 데리고 있을거면, 수비로 데리고 있는것도 나쁘지 않다라는 걸.

 

크리스트는 이러한 포지션 변경이 TJ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새 코칭 스태프가 그를 믿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크리스트는 대학 시절 공격(타이트 엔드)에서 수비(디펜시브 엔드)로 포지션을 바꾼 전 위스콘신 선수에게 전화했다: 바로 JJ였다.

 

"저는 JJ한테 전화해서 제가 이상한건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JJ가 위스콘신에서 뛸 때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크리스트가 말했다. "저는 그 때 TJ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몰라서 한번 알아보고 싶었죠. 정말 타이트 엔드에 마음이 있는건지."

 

JJ는 아직도 대화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와 TJ는 자주 얘기했고, JJ는 그의 동생이 또 다른 재활을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TJ는 정말 풋볼을 플레이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크리스트가 전화했을 때 JJ는 아웃사이드 라인배커가 TJ에게는 완벽한 포지션일거라고 말했다. 타이트 엔드로 뛸 때는 모든 플레이마다 무엇을 해야되는지에 대한 전술 지시를 듣는다 - 어떻게 블락하는지, 무슨 라우트를 타는지, 그러고 나서는 공이 자신의 방향으로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항상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수비에서는, 모든 플레이에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죠." JJ는 최근 설명했다. "보면, 어떨 때는 해야 되고, 다른 때는 하지 말아야 하긴 하지만 갭을 찢는 플레이를 한다면 패스 러쉬에서 이길 수 있어요. 이론적으로 보면, 모든 플레이에서 공에 도달할 수 있는겁니다. 저는 그게 TJ의 마인드셋과 멘탈리티라고 생각하고 그의 플레이는 마인드와 정말, 정말 잘 맞아요."

 

며칠 뒤, 크리스트는 TJ를 팀 미팅룸으로 불렀고 그가 포지션을 바꿀 마음이 있는지 물어봤다. TJ는 흥미로워했다. 그는 크리스트에게 하루 동안 생각해볼 시간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날 밤, TJ는 그의 부모님과 JJ에게 전화했고, 크리스트가 이미 그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그래, 한 번 해 볼만한 가치가 있어'라고 하더군요." TJ가 말했다. "저는 제 행동이 정말 맘에 들었어요. 마음 속의 불꽃이 다시 점화된 느낌이었죠."

 

티베사가 크리스트와의 통화를 마치고, 그는 캐빈으로 돌아가기 전 TJ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들은 복도를 지나가면서 한 번 정도 인사를 했다고, 티베사가 말했지만, 그는 TJ와 위스콘신의 선발 풀백인 데릭을 JJ의 동생들이라는 이유로 잘 알고 있었다.) 티베사는 TJ를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TJ는 답장을 했다: "코치님, 저는 포지션을 바꾼게 너무 흥분됩니다. 하지만 코치님이 저를 가르쳐주셔야 돼요. 저는 아웃사이드 라인배커 자세도 잘 모르거든요."

 

"걱정 마," 티베사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가르쳐줄거야."

 

 

나머지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들도 TJ가 합류한 것에 만족했다.

 

알려진 바로는, TJ는 타이트 엔드로써는 막기 어려운 존재였다. 6-5의 신장을 가진 운동능력이 뛰어난 리시버이자 강하고, 확실한 블라커였다. 만약 그의 무릎이 버텼다면 TJ가 NFL 타이트 엔드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들이 남아 있는 이유이다. 당시 주전 아웃사이드 라인배커였던, 현 재규어스 소속의 조 쇼버트는 TJ가 신입생이였을 때 팀메이트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데, 만약 그가 수비수였다면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였다. 그는 엣지 러셔가 갖춰야 할 프레임과 위압감을 갖추고 있었다.

 

위스콘신은 피워키 고등학교에서 TJ가 타이트 엔드로 뛰면서 3학년 때 브레이크아웃 시즌을 보낸 것을 본 뒤 장학금을 제의했고, 그는 곧바로 수락했다. 피워키 헤드 코치 저스틴 프리스크는 공을 TJ의 손에 자주 쥐어주고 싶어했으며, 더 이상 리쿠르팅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TJ는 졸업 학년때 쿼터백으로 뛰었다. 그는 연습때 펀트를 찬 적이 있는데, 공은 70야드정도 떨어진 테니스 코트로 튀었고 그래서 피워키의 주전 펀터 자리도 맡았다. 디펜시브 엔드로써, 그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었는데 엣지에서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지만, 공격에서 더욱 뛰어났기 때문에 수비에서는 거의 플레이하지 않았다.

 

"얼마나 저희가 영리했는지 아시겠죠?" 프리스크가 말했다.

 

위스콘신에서, TJ는 레드셔츠 시즌을 보냈는데, 이는 훈련과 피지컬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고 2013년 시즌을 스카우트 팀에서 보냈다. 그와 현재는 덴버 브롱코스에서 뛰는 트로이 푸마갤리는 스카우트 팀의 타이트 엔드로 뛰면서 주전 수비진들에게 연습 상대가 되주었다. 그들은 누가 더 많은 패스들을 잡는지 매주마다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 두 명은, "언제나 문제를 만들어냈었죠." 라고 쇼버트가 말했다. TJ는 웃었고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옛 스카우팅 필름을 한 번 보세요. 저는 랜디 모스 같은 캐치들을 만들어냈었죠." 

 

2013 위스콘신의 시즌이 끝나고 볼 게임 준비에 들어가자, 스카우트 팀 멤버들은 조금 더 많은 플레이들을 연습해볼 수 있었다. TJ는 블라킹 드릴 때 그의 오른 발이 박혔던 걸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는 그의 무릎이 안쪽으로 휘어지고 슬개골이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걸 느꼈다. TJ는 사이드 라인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가 트레이너 룸으로 향했고, 그가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길 빌었다. 이 사건은 TJ의 무릎이 그의 성장을 멈추게 했던 첫번째 사례지만, 마지막 사례는 아니었다.


2년과 두 번의 무릎 수술을 거친 어느 날, TJ는 그의 아버지에게 소방관이 되면 어떤가에 대해 질문했다. 존은 거의 30년을 와케샤 소방서에서 보냈으며, lieutenant의 계급까지 올라갔지만, TJ의 질문에 호기심보다 더 많은 게 들어있음을 눈치챘다. 재활과 포지션 변경을 거치던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었고, 존은 그의 아들의 목소리에서 의구심을 들을 수 있었따. TJ가 소방관이 되기 위한 과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자, 존이 끼어들었다.

 

"이봐, 좋은 직장인건 맞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너를 위한 일은 아니야."

 

그러자, 존은 JJ가 센트럴 미시간을 떠나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위스콘신으로 전학을 간 후 피자 헛 배달부로 일할 때 그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조언을 TJ에게 해줬다.

 

"제가 말했죠, "아들아, 우리는 너가 포지션 변경을 원한다면 응원해줄거야. 그냥 연습에서의 모든 플레이가 너의 슈퍼볼이라고 생각하라고." 존은 회상했다. "'너는 모든 플레이에서 코치들에게 너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너가 120퍼센트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돼. 만약 너가 그렇게 한다면, 성공하는거야. 안되면, 상황을 받아들여야지.'" 

 

"'그러면 내가 소방관이 되는 법을 알려줄게.'"

 

 

계속 된 부상은 TJ의 자존감을 부셔놓았다. 볼 게임 대비 훈련 때, 오른쪽 무릎. 봄 훈련 때, 왼쪽 무릎. 가을 캠프 때, 한번 더 오른 쪽 무릎. 봄 훈련 때, 다시 왼쪽 무릎. 그의 내측슬개대퇴인대, 슬개골에는 안정제가 투여됐다. 처음에, 인대는 휴식만 취해도 회복됐지만, 계속 슬개골이 탈골될 수록 찢어지고 상태가 악화되어만 갔다.

 

세번째 슬개골 탈골을 겪고난 2014년 8월에 TJ는 텍산스 팀 닥터 월트 로의 집도 하에 수술에 들어갔고 시체의 햄스트링 일부에서 새로운 인대를 이식받았다. TJ는 한때 그의 양 무릎이 고쳐진 줄 알았으나, 한 동안 위스콘신의 캠퍼스를 휠체어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은 맘에 들지 않았다. (데릭은 TJ의 수술 일 주일 뒤 발 수술을 받았으며, 존과 코니 와트는 한 달 동안 호텔에서 살았는데, 부상당한 아들들 - 그리고 그들의 목발들 - 을 수업과 재활훈련에 데려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TJ의 네 번째 부상 이후인 그 다음 해의 봄에, 닥터 로는 왼쪽 무릎을 수술했다.

 

"당연히 행복하지 않았죠," TJ는 말한다, "그래도 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오케이, 무릎을 고쳐보자고. 그리고 훈련에 돌아가서 어떤 일이 생기면 이젠 내 알바가 아니야.'

 

그의 말로는, 그때가 풋볼에서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이다.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다 담은 느낌이죠."

 

TJ는 올바른 식습관, 수면 패턴, 확실한 재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첫번째 수술과 달리, 그는 부상당한 무릎으로 걸어다니지 않았다. 그는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쉬었는데, 그의 재활기간을 줄이고자 함이였다. JJ는 TJ에게 압박 무릎 보호대와 함께 경기용 아이싱 머신를 보냈다. 그래서, 재활훈련을 한 매일 밤마다 TJ는 데릭과 함께 사는 아파트에 앉아 그의 무릎을 아이싱했다.

 

 

 

동기부여를 찾기 위해, TJ는 심각한 무릎 부상에서 돌아온 운동 선수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ACL과 MCL 파열이라는 부상을 딛고 MVP를 수상한 애드리언 피터슨의 하이라이트를 봤고, ACL 파열 이후 불스로 복귀한 데릭 로즈의 영상도 봤다. 그러고 나서, TJ는 동기 부여 전문가 에릭 토마스의 영상 몇 개를 우연히 보았고 푹 빠져버렸다.

 

"그 말들은 아직도 제 심장에 박혀있네요," TJ는 말한다. "뻔한 얘기긴 하지만, 자기 자신의 동기부여를 찾고 있는거잖아요. 가끔씩 그런 비디오들이 틀에 박힌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던 저한테는 큰 영감이 되었고 그 말들을 이해하면 할수록, 저는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제 모든 것을 쏟아부울 각오를 하게 되었죠. 인생을 바꿔놓은 거에요. 제가 여기까지 오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할까요."

 

 

2015년 8월 위스콘신의 가을 캠프에서 처음 패드를 착용하고 훈련하던 날, TJ는 일대일 패스러쉬 훈련에서 자세를 취했다. 그는 수술 후 세 달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고, 주의 대상이였다 - 개인 훈련에는 참가가 가능하지만, 11 대 11 훈련을 할때는 사이드라인에서 무릎을 아이싱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 드릴은 그에게는 슈퍼볼이였다. 호각이 울리자, TJ는 앞으로 돌진했고 블라커를 제쳤다.

 

"그 때는, 제가 뭘 할지도 잘 모를 때였죠," TJ가 말했다. "저는 그냥 필드에 나가서 상대방을 이긴거죠. 그 경험이 저한테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패스 러셔로써의 TJ의 재능은 명백히 보였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었다. 위대한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들은 거의 모두가 패스 러쉬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최고의 선수들은 모든 걸 할 수 있다: 쿼터백을 추적하고, 커버리지로 드랍하거나, 러닝 게임을 막는 것. 티베사는 TJ가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득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백지와 같은 상태였고, 가르침 받기를 원했다. 티베사는 이러한 이유가 그를 테크니션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TJ는 위스콘신의 주전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들인 쇼버트와 빈스 비글의 예전 영상들을 공부했다. 남의 훈련 영상을 분석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TJ는 인정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보고자 하였다. 주전 선수들은, 실수를 만들어도 다음 플레이에는 이를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백업 선수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올 지 불확실하다.

 

가을 캠프 때, 주전 선수들은 TJ의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도움을 주었다.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들이 bag drill을 처음으로 하러 갔을 때, 쇼버트는 TJ에게 손과 엉덩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기술들을 TJ에게 설명해주었다.

 

"플레이에서의 자연스러움은 얻기가 힘들죠," 쇼버트는 말했다. "하지만 TJ는 빠르게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반복이 필요하지만, 그는 툴들을 가지고 있었죠. 만약 그가 계속 발전한다면, 대단한 선수가 될 거라고 말할 수 있었죠."

 

2015시즌 개막 당시에는, TJ는 오직 킥오프 리턴팀으로만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매 주마다, 코치들은 스페셜 팀에서 뛸 때나 연습에서 임팩트 있는 플레이를 남기라고 그에게 조언했다. 크리스트는 TJ가 거친 태클을 만들어낸 9월달 경기에서 사이드라인에서 데릭과 함께 서 있었다. 데릭은 환호성을 질렀고, 크리스트는 미소를 지었다. "저는 TJ가 더 많이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크리스트가 말했다. "그는 좋은 플레이들을 만들어요. 여유로워보였고요. 그는 여전히 배우고 있었지만, 패스 러싱 스킬이나, 노력, 꾸준함은 그때도 뛰어났죠."

 

하와이를 상대로 한 마지막 non-conference 경기 전에, 디펜시브 코디네이터 데이비드 애란다는 TJ를 염두해두고 새로운 수비 스킴을 설정했다. 이는 애란다가 "치타"라고 부르는 2-4-5 셋 업이였는데, 위스콘신이 자랑하는 최고의 패스 러셔들을 서드 다운 상황에서 모두 필드에 집어 넣는 것이다 - 여기에는 TJ도 포함이었다. 애란다는 TJ가 아래쪽에 위치한 두 명의 라인맨 중 하나가 될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고, TJ는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죠!" (하와이는 서드 다운 12번의 공격 중 3번만을 성공했고 한 점도 득점하지 못했다) 치타 패키지는 TJ를 포함시켰고, 잭 시시를 인사이드 라인배커로 옮기게 만든 한 선수의 부상은 더 많은 스냅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었다. TJ는 여전히 롤 플레이어였다 - 8개의 태클, TFL 1.5개로 시즌을 마쳤다 - 하지만 그는 경기당 13.7점을 허용한 전미 최고 수비진의 일원이였다.

 

"그 해는 정말 재밌는 한 해였죠," TJ가 말했다, "그리고 치타 패키지는 정말 최고였죠."

 

티베사는 TJ가 자신의 역할과 테크닉에 익숙해짐에 따라 뎁스 차트에서 계속 치고 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티베사가 말하길, 시즌 말미에는 TJ가 쇼버트와 비글의 교체멤버로 나옴에 따라 전력의 누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All-American 라인배커인 쇼버트는 그 해 봄, 브라운스에 드래프트되었고, 그 자리를 TJ가 차지했다.

 

"봄 학기 중반에는," 티베사가 말했다. "우리는 '오케이, 빅 텐 최고의 라인배커 조 쇼버트를 잃었지만 TJ는 조의 좋은 대체자일 뿐만 아니라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가 될거야' 라고 생각했었죠."

 

 

TJ의 레드셔츠 주니어 시즌이 시작되기 몇 주 전, 셀레브리티가 캠퍼스를 방문해 주말 동안 그의 아파트를 뒤집어 놓았다. 그 사람은 매디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JJ였고, 그 해에 JJ는 로렌스 테일러와 더불어 NFL DPOY를 세 번 수상한 유이한 선수가 되었다.

 

JJ가 도시에 머무르던 어느 오후, 그와 TJ는 위스콘신 풋볼 훈련장의 필름룸에 박혀있었다. JJ는 그의 동생에게 리모컨을 건네주며 "필름 분석하는 방법을 보여줘봐."라고 말했다. TJ는 그의 이전 경기들의 영상을 보여줬고, 두 명은 이를 분석하였다. 왓 형제들이 트위터나 TV에서 농담하는 모습만을 본 팬들이라면 이 형제가 함께 모여서 하는건 테이프를 보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 거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때가 우리가 앉아서 필름을 함께 본 유일한 날일거에요, 지금까지도요." TJ가 말한다.

 

한 시간 반 동안, TJ는 필름을 틀었고 JJ는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필름을 분석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그는 TJ가 왜 뉴트럴 존보다 최소 1야드 뒤에 라인업하고 있냐고 물었다. TJ는 이 행동이 태클을 만나기 전 그가 가속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했었다. 대신 JJ는 이 행동이 쿼터백에게 0.5초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JJ는 TJ에게 스냅 직전에 어딜봐야 하는지, 어떻게 오펜시브 태클들과 그들의 용어들을 해석하는지 가르쳐주었다. JJ에게 있어서, 필름 룸은 그의 패스러쉬 재능과 풋볼에 대한 연구가 합쳐지는 공간이었다.

 

"그때부터," TJ가 말했다, "저는 필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죠."

 

TJ는 항상 JJ의 그림자 뒤를 걸었다. 몇 년동안, 그는 짜증이 났었다. JJ가 올려놓은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TJ는 위스콘신이 아니라면 어느 대학이든 가서 풋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매디슨에서 그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포지션 변경 이후에, 그는 더 이상 그의 경기를 롭 그롱카우스키나 지미 그래험을 본받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JJ를 주목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제 형빼고는 다른 NFL 선수를 우러러본적이 없어요," TJ가 말한다. 신체적으로, 그들은 차이가 있었다. JJ는 더 크고, 힘이 강하며 디펜시브 엔드였다. 하지만 JJ가 어떤 행동을 하든 TJ는 모방하려고 하였다.

 

"저를 모조품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네요," TJ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JJ가 하는 플레이들을 똑같이 할 수 있죠, 제 프레임이 형과 같지는 않아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요."

 

TJ가 엣지 러셔에서의 경험을 얻을 수록, JJ는 그들이 피지컬에는 차이가 있을 지언정 스냅에서의 적극적인 마인드셋은 똑같이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수비수로 성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이유죠," TJ가 첫 번째 DPOY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JJ가 말한다. "누가 봐도, 지금 그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죠."

 

그 해 가을, TJ는 위스콘신에서 JJ가 보여줬던것 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램보 필드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그는 fourth-and-1 상황에서 LSU의 레너드 포넷을 막아냈고,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미시간 스테잇을 상대로 2.5개의 sack을 기록했으며 퍼듀 상대로는 픽-식스를 기록했다. 그는 63개의 태클, TFL 15.5개, 11.5개의 sack을 기록했고 All-American에 선정되며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아웃사이드 라인배커 코치 티베사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그의 휴대폰이 이미 경기 영상을 돌려보고 있는 TJ가 보내는 문자들로 인해 계속 울렸던 것이다.

 

"어떻게 블락을 해야되는지, 특정 플레이에서 더블팀에 어떻게 대처해야되는지 같은 걸 물어봤었죠," 현재는 오리건 스테잇에서 코칭하는 티베사가 말한다. "'이봐 TJ, 팀메이트들이랑 셀레브레이션하러 가라고. 필름 그만 보고.' 같은 말이 나오는거죠."

 

위스콘신에서의 그의 마지막 무릎 부상이 일어나기 8일 전인 2015년 3월 12일 - 그의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하기 전이자, 두번째 수술이나 포지션 변경, 그리고 최종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이였던 - TJ는 공책을 열어 대문자로 이런 문장을 썼다. 'WHY NOT ME?' The Ringer의 드래프트 프로필에 따르자면, 다음 페이지에 TJ는 향후 몇 년간의 풋볼 커리어에서 설정해 둔 네 가지의 큰 목표들을 적어놨다.

 

• 250 파운드로 벌크업하기
• 40야드 대쉬 두 번째 시도에서 4.7초 이하로 달리기
• All-Big Ten 퍼스트팀 되기
• 1라운드에 드래프트되기

 

2017 NFL 콤바인을 나서면서, 그는 세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 - 252 파운드, 40야드 대쉬 두 번째 시도에서 4.69초 기록, All-Big Ten과 All-American. 그는 졸업하기까지는 1년이 남았지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위스콘신을 떠났다.

 

 

그의 부상 이력때문에, TJ의 이름이 1라운드에서 불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있었지만 스틸러스는 33픽을 가지고 있던 그의 고향팀 패커스를 앞질러 30픽에서 그를 선택했다.

 

"위스콘신에서는 패커스가 그를 뽑지 않은 거에 대해 불만의 감정들이 아직도 약간 있어요," 그의 고등학교 감독인 프리스크가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죠."

 

TJ에게 피츠버그는 딱 맞는 팀이었다. NFL에서 위스콘신과 가장 유사한 수비 스킴을 쓰는 팀이 스틸러스였기 때문이다. 2017 시즌 개막전, TJ는 개막전에 아웃사이드 라인배커로 출장한 29년만의 루키가 되었으며 그는 브라운스의 확고한 프로볼러 태클 조 토마스를 상대로 두 개의 sack과 하나의 인터셉션을 기록하며 화려한 데뷔전을 가졌다. 쇼버트는 브라운스 소속으로 선발 출장했고, TJ와는 맞붙지 않았다. 쇼버트는 그가 본 것이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TJ가 건강한 이상, AFC 북부 지구 태클들은 곤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TJ는 제가 위스콘신에서 패스 러싱을 가르쳐줄때보다 훨씬 늘었죠," 쇼버트는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제가 대학에서 하던 무브는 치고 빠지기밖에 없었거든요. 그는 그것보다는 훨씬 많은 무브들을 하죠."

 

오늘날, TJ의 성공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이제 알 듯이 어떻게 29명의 선수가 그의 앞에서 뽑혔는지 모르겠다는 시각이다. TJ는 62경기에서 49.5개의 sack을 기록하며 스틸러스 프랜차이즈에서 8번째로 많은 sack을 기록했으며 세 시즌 안에 제임스 해리슨의 프랜차이즈 레코드인 80.5개를 갱신할 수 있다. TJ는 2019년 forced fumbles(8) 부문에서 리그 1위였으며 2020년에는 sack(15)와 TFL(23)에서 그러하다.

 

반면에, 4번의 무릎 부상과 2번의 수술을 거치고, 포지션 변경까지 한 22살의 라인배커가 한 시즌만 뛰고도 1라운드 픽이 되버렸다는 사실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시각이다. 어떨 때는, 이런 모든 사건들이 아버지 존 와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그가 말했듯이, 모든 성공에는 약간의 운이 있으며 그의 아들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에 비하면 TJ의 행운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신이 주신 재능, 워크 에식, 배우고자 하는 의지, 재활, 딱 맞는 신체적 툴들, 포기하고자 했지만 그러지 않은 나날들이 그를 만들었다.

 

어쨌든 간에 오퍼는 아직 살아있다. 만약 TJ가 풋볼에서 실패한다면, 그의 아버지가 소방관이 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출처, The Athlteic, Stephen J. Nesbitt, <The T.J. Watt story you don’t know: Surgeries, despair and a would-be firef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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