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가장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투수는 제이콥 디그롬이고, 메이저리그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에게 가장 놀라움을 주는 선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거듭난 케빈 가우스먼이다. 이번 시즌 막강한 투수진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가우스먼은, 글을 쓰는 6월 25일 현재 15게임 동안 96.2이닝을 던지며 ERA 1.49를 기록하고 있으며, K/9 10.43, BB/9 1.86, HR/9 0.65라는 스탯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칭 내용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가우스먼이 완벽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위력적인 공을 많이 던지자'라는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가우스먼은 볼티모어 시절부터 제구력은 좋았던 투수지만 탈삼진을 이끌어내는 스터프 능력이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다. 데뷔시즌부터 2019시즌까지 가우스먼의 커리어 K/9은 8.3이었는데, 준수하지만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가우스먼의 K/9 수치는 수직 상승했고, 이번 시즌을 포함한 최근 두 시즌 동안 K/9 11.12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 전체 9위에 해당하는 수치이고, 가우스먼보다 높은 순위에 위치한 선수들의 면면을 보자면 제이콥 디그롬, 셰인 비버, 타일러 글래스나우 등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2019시즌 Pitch%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리그 전반기에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어느정도 구사했던 가우스먼이지만, 후반기에는 포심 패스트볼, 스플리터만 던지는 투피치 투수로 거듭났다. 이는 애틀랜타 시절 선발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가우스먼이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불펜 투수로 나왔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K/9 수치는 크게 증가했다. (애틀랜타 시기 K/9 9.56 -> 신시내티 시기 K/9 11.69) 자이언츠의 코칭 스태프는 이러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자이언츠는 가우스먼을 선발로 내보내면서 가장 자신 있는 두 가지 구종의 구사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를 주문했고,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은 정말 특수한 상황에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가우스먼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코치들이 했던 말이 정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슬라이더를 20% 이상 던지는게 도움이 안된다면, 왜 굳이 20%나 던져야 되냐는 거죠. '가장 자신 있는 두 가지 구종이 뭔가요?' 라고 물어보면, 저는 무조건 패스트볼이랑 스플리터라고 말할거에요."
출처 - ESPN, 6/11, How did the San Francisco Giants become the best team in baseball?
시즌별 Pitch%를 보면 이런 변화가 확실히 드러난다. 커리어 초기에 꾸준히 10% 이상 던져오던 슬라이더의 비율은 지난 시즌부터 한 자리수대로 떨어졌으며, 이번 시즌의 포심 패스트볼 구사율은 49.5%, 스플리터의 구사율은 37.9%로 앞서 언급했던 90%에 거의 근접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Run Value 순위를 보면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다. Top 5에 하나의 구종만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가우스먼은 스플리터와 포심 패스트볼 모두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니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건, 가우스먼의 스플리터 커맨드이다. 데뷔 시즌부터 가우스먼은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활용해왔고 좋은 결과를 내었지만, 자이언츠 이적 후 스플리터의 위력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스플리터의 피장타율 변화추이를 보면 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가우스먼은 자이언츠 이적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의 좌측 아래 모서리를 제구 지점으로 잡았지만 이적 이후에는 존 바깥으로 공을 떨어트리고 있다. 타자들은 이런 공을 제대로 컨택해내지 못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Whiff%는 상승했다. (2019: 39.8 -> 2020: 49) 아래의 왼쪽 사진이 2019년의 제구 분포이고, 오른쪽이 2020년의 제구분포이다.
이번 시즌은 2020 시즌보다는 스플리터의 제구가 좋지 못하고 공이 존 안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으며, Out Zone% 비율도 예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Out Zone의 제구 분포를 보면 이러한 경향성 자체는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왼쪽 사진이 2019 시즌이고, 오른쪽이 이번 시즌이다. 타겟 지점을 미세하게 벗어나는 공이 많았던 2019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서는 떨어트릴 공은 확실히 떨어트리고 있다.
물론 이 페이스가 끝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포심 패스트볼인데, 수평 무브먼트가 좋은 공이긴 하지만, 제구 자체가 너무 가운데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포심 패스트볼의 기대 스탯보다 실제 스탯이 상당히 잘 나오고 있으며, 시즌이 지나면 수치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BA .190 / xBA .252, SLG .327 / xSLG .460, wOBA .249 / xwOBA .325) 과연 가우스먼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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