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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유타 선수 (2) - '전미 최고의 대학 선수' 트레이 버크

NBA/Utah Jazz

by IN-N-OUT 2021. 2. 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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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제 2의 페니 하더웨이' 단테 엑섬 (spoflix.tistory.com/27)

 

트레이 버크는 유타가 최근 20년 동안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 중 대학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고든 헤이워드는 버틀러라는 무명 대학을 이끌고 2년 연속 내셔널 챔피언십에 진출했고, 데런 윌리엄스도 일리노이라는 약체팀으로 내셔널 챔피언십에 가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둘과 버크의 차이점이 있다. 버크는 전미 대학에서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존 우든 어워드' 2013년 수상자이다. 빌 월튼, 마이클 조던, 팀 던컨 같은 레전드와 케빈 듀란트, 앤서니 데이비스, 블레이크 그리핀 같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유명 선수들, 최근에는 자이언 윌리엄슨이 이 상의 화려한 수상자 명단을 장식한다. 

 

트레이 버크는 Big Ten 컨퍼런스의 전통의 강호 미시간 대에 입학했고, 프레시맨 시즌부터 컨퍼런스 ROY, 미시간 팀 내 MVP, All-American Honorable Mention 등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낸다. 한 시즌을 마치고 바로 드래프트로 갈 수 있었지만, 버크는 1년 더 대학에 머무르기로 결정하고 역사적인 2012 시즌을 맞이한다.

 

2012 시즌에 버크는 평균 18.6 득점, 6.7 어시스트, 야투율 46.3%, 3점슛 38.4%라는 훌륭한 스탯을 올렸고, 팀을 March Madness 결승까지 진출시킨다. 그 시즌에 올린 어시스트 갯수 260개는 아직도 미시간의 단일 시즌 최다 어시스트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때 미시간은 버크 - 팀 하더웨이 주니어 - 닉 스타우스카스 - 글렌 로빈슨 3세 - 미치 맥개리로 이어지는, NBA 팬이라면 한 번씩 들어봤을 만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팀의 명실 상부한 리더는 버크였다.

 

비록 결승에서는 루이빌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의 고배를 마셔야했지만, 버크는 대학 선수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한 해에 얻었다. Big Ten 올해의 선수상이나 All-American 퍼스트 팀은 기본이고, 대학 최고의 포인트 가드에게 주는 밥 쿠지 어워드나, 전미 대학 최고의 선수를 뽑는 네이스미스 어워드, 존 우든 어워드 모두 버크의 차지였다.  

 

이렇게 화려한 대학 시절을 보냈음에도, 버크는 드래프트에서는 저평가를 마주해야만 했다. 6-1이라는 사이즈는 NBA에서 포인트가드를 보기에는 작은 신장이었고, 수비력 문제나 그를 짐머 프레뎃 같은 '대학용 선수' 정도로 보는 시선도 한 몫했다.

 

이쯤에서 그 당시 유타 재즈의 상황을 보자, 12-13 시즌 유타의 최종 성적은 43승 39패. 분명히 나쁘지 않은 성적이였고 플레이오프는 탈락했지만, 동부 컨퍼런스였으면 7번 시드를 딸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팀 내 1, 2옵션을 담당했던 알 제퍼슨과 폴 밀샙이 FA로 풀리는 상황이었고, 확실한 주전 혹은 팀에서 밀어주는 유망주들이 있었던 다른 포지션과 달리 포인트 가드 포지션은 모 윌리엄스를 필두로 평균 이하의 선수들만 있었기 때문에, 포인트 가드와 센터의 보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였다.

 

단장 부임 이후 첫번째 드래프트를 맞이한 데니스 린지는 2013 드래프트 당일,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을 트레이드를 두 건 단행하였다. 첫 번째 트레이드는, 9번 픽으로 뽑힌 버크를 데려오기 위해 미네소타로 14, 21번 픽을 트레이드 한 것이고 (이 픽은 샤바즈 무하마드와 골귀 젱이 된다), 두 번째 트레이드는 NBA 컴바인에서 윙스팬과 스탠딩 리치 기록을 갈아 치운 센터 유망주를 데려오기 위해 46번 픽과 현금을 보낸 것이었다. 이 센터 유망주의 이름은 루디 고베어였다.

 

유타는 트레이 버크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드래프트 동기인 루디 고베어가 동 포지션의 에네스 칸터라는 존재와,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로테이션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과는 다르게, 버크는 그 해 뛴 70경기 중 68경기를 선발로 출장했고, 평균 32.3분이라는 넉넉한 출장시간도 보장받았다. 그 당시 유타의 주전 라인업이 버크 - 헤이워드 - 리처드 제퍼슨 - 마빈 윌리엄스 - 페이버스였고, 페이버스나 헤이워드, 벅스 같은 선수들이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터트리기 전이였던 걸 감안하면 자신만 잘한다면 루키 시즌부터 1옵션을 맡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트레이 버크는 많은 스카우터가 우려했던 약점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루키 시즌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수비력은 대학 때부터 저평가를 받았으니, NBA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격이었다. 아래는 DX 시절 조나단 지보니가 언급했던 버크의 공격에서의 약점인데 NBA에서 이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 NBA 레벨에서 버크는 골밑에서 고전할 것이다. 림에서의 야투 성공률은 대학 평균 정도의 수치인 52%밖에 지나지 않으며, 사이즈가 좋고 운동능력이 좋은 프런트코트 선수들에게 사이즈와 근력의 부재로 고전한다.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13-14 시즌 버크의 림 근처 야투 성공률은 44.7%에 그쳤는데, 그 시즌 리그 평균이 55.7%라는 걸 생각하면 골밑에서는 경쟁력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얇은 프레임을 고려한다면, 대학 시절보다 자유투 획득이 떨어질 것이다.

 

 대학시절 100 포제션 당 자유투 6.7개를 얻었던 버크는, NBA 첫 시즌에서 2.6개만을 얻어내는데에 그쳤다.

 

- 림 어택하면서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기 때문에, 82게임 출장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적은 결장 수이긴 하지만, 82경기 중 12경기는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다.

 

긴 레인지와 다양한 상황에서 정확함을 자랑했던 외곽 슈팅력도 NBA에서는 저조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평균 12.8 득점, 5.7 어시스트, 야투율 38%, 3점슛 33%라는 공격 스탯에 D-LEBRON -1.9, D-RAPTOR -2.2라는 처참한 수비 스탯을 남기며 루키 시즌을 마무리했다. 아마 버크가 루키 시즌을 적당히만 보냈어도 유타가 2014 드래프트 때 단테 엑섬을 뽑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유타가 트레이 버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14-15 시즌에도 시즌 중반까지는 선발로 내보내줬고, 선발로 밀려나서 벤치 멤버로 나올 때도 경기당 27분 정도의 출장시간을 보장해주며 충분한 기회는 주었다. 버크도 그 시즌에 본인의 유타에서의 최고의 플레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닉스전 위닝 버저비터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골밑에선 리그 최하수준이고, 안 좋던 3점 슛은 전보다 더 떨어졌으며 수비력은 여전히 하위 4%의 마진 스탯을 보여줬다. 유타의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팀을 운영하던 타이런 코빈이 아니라 수비력이 안되는 선수를 코트에 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퀸 스나이더였고, 자신의 경쟁자인 단테 엑섬도 갈수록 리그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타에서의 버크의 입지는 극도로 좁아졌다.

 

버크의 마지막 기회는 2015-16 프리시즌이었다. 주전 포인트가드로 내정된 엑섬이 시즌 아웃되었고, 경쟁자라고는 같은 드래프트 2라운더이자 NBA에 처음 발을 들인 하울 네토 빼곤 없었다. 하지만 그 경쟁에서 네토는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좋은 수비를 앞세워 퀸 스나이더의 선택을 받았고, 버크는 또 다시 벤치멤버로 시즌을 시작한다. 시즌 초반에는 리딩을 줄이고 스코어링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기하며 데뷔 이후 가장 좋은 공격 효율을 보여줬지만, 애틀랜타에서 쉘빈 맥을 데려온 이후에는 뎁스 차트에서 3번째 가드로 밀리며 가비지 멤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유타는 2016년 7월 버크를 워싱턴으로 트레이드하며 그와의 악연을 끝마쳤다. 1라운드 2장을 소모하며 데려왔지만 결국에는 2라운드 한 장만을 남기고 쓸쓸히 사라졌다.

 

그 후 1년 뒤 버크가 남긴 트윗이다. 아무도 유타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게 그의 의견인데, 버크 같이 플레이하는 선수는 유타 팬들도 보고 싶지 않다. 트레이 라일스나 에네스 칸터, 버크처럼 유타에서 못하고 나간 선수들이 유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는건 하나의 법칙이다.

 

그래도 버크의 추후 농구 인생은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 워싱턴에서도 방출됐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머리를 콘로우로 바꾸고 닉스로 가더니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트레이 아이버슨'이라던 소리도 들어봤고, 지난 시즌 버블에서는 클리퍼스 상대로 한 경기에 25점이나 넣는 경기도 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은 느낌이다.

 

트레이 버크는 데런 윌리엄스가 나간 이후 대가 끊긴 프랜차이즈 포인트 가드를 찾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였고, 2013년에 시작된 여정은 멤피스에서 콘리를 데려오고야 마무리된다. 버크의 실패 이후, 유타는 대학 시절 성적보다는 선수가 가진 툴이나 성장 가능성에 맞춰 선수를 드래프트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버크는 유타의 운영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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