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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거스르는 팀, 2021 시애틀 매리너스

MLB

by IN-N-OUT 2021. 9. 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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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애틀 매리너스와 와일드카드 2위권과의 격차는 4게임에 달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같은 지구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뒤지는 5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시애틀의 시즌은 그대로 끝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시애틀은 무려 10승 2패를 기록하며 뜨거운 기세를 보여줬고, 이제 와일드카드 2위인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격차는 단 0.5게임에 불과하다. 여전히 팬그래프나 538 같은 통계사이트는 시애틀의 와일드카드 행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야구가 전력만으로 하는 스포츠는 아니지 않은가.

 

 이번 시즌 시애틀은 그동안 통용되어왔던 야구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수치가 바로 '피타고리안 승률'이다. '득점을 많이 내고, 실점을 적게 내는 팀이 강한 팀'이라는 아주 간단한 논지를 바탕으로, 득실 마진을 기반하여 승률을 계산한다. 우승권 팀들은 보통 세 자릿수 이상의 득실마진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권 팀들도 아무리 못하더라도 플러스 마진은 기록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번 시즌 득실 마진은 -50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플레이오프 경쟁을 하고 있는 팀들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은 물론이고, 콜로라도 로키스(-5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54) 같이 일찌감치 시즌을 마무리한 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연히 피타고리안 승률도 낮을 수 밖에 없다. 피타고리안 승률 기반으로 이번 시즌 매리너스의 성적을 계산한다면, 매리너스는 74승 84패라는 승패 마진 -10의 부실한 팀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현재 시애틀의 승수는 88승이다. 무려 기대 승률보다 14승이나 더 많은 수치이다. 최근 10시즌 동안 이번 시즌 시애틀 같이 '운이 좋은 팀'은 없었다.

 

'럭키 가이들': 최근 10시즌 동안 기대 승수 대비 실제 승수가 가장 높았던 팀들

 

2021 시애틀 매리너스 +14 (실제 성적: 88승 70패, 현재진행형)

2016 텍사스 레인저스 +13 (실제 성적: 95승 67패) 

2018 시애틀 매리너스 +12 (실제 성적: 89승 73패)

2017 시애틀 매리너스 +12 (실제 성적: 71승 91패)

2012 볼티모어 오리올스 +11 (실제 성적: 82승 80패)

 

 시애틀의 이러한 성적은 어디서 기인되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1점차 경기에서의 높은 승률이다. 

 

 위 그래프는 최근 6시즌(2016-2021)의 데이터에서 기반한, 실제 승수와 기대 승수의 차(Luck)와 1점차 경기에서의 승률(W-L%)과의 관계를 표현한 Scatter Plot이다. 저 추세선만 봐도 강한 상관관계가 느껴지지 않는가? 실제로 Luck과 W-L%의 상관계수는 무려 0.605에 달한다. 야구 통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1점차 경기에서 높은 승률을 가진다면 기대 승수 대비 실제 승수도 같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의 시애틀 매리너스는 리그에서 1점차 승부에 가장 강한 팀 중 하나이다.

 

 접전에 강한 팀: 2021시즌 1점차 승부 승률

 

 LA 에인절스: 0.649

 시애틀 매리너스: 0.64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0.644

 뉴욕 양키스: 0.600

 밀워키 브루어스: 0.600 

 

 이번 시즌 시애틀은 이런 접전에 강할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바로 '클러치 히팅'과 강력한 불펜이다.

 

 시애틀의 타격은 wRC+ 94(전체 19위)라는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경쟁력이 있는 타선이라고 할 수 없으며, 선수 개개인의 성적을 따져봐도 wRC+ 120을 넘는 선수가 타이 프랑스(wRC+ 130), 미치 해니거(wRC+ 121) 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에 잠잠하던 시애틀의 타선은 중요한 상황만 되면 리그에서 가장 강한 타선이 된다. 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Clutch(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지표)를 보면 이러한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심장들': 2021시즌 팀별 Clutch 순위

 

시애틀 매리너스: 9.18

필라델피아 필리스: 3.43

피츠버그 파이러츠: 3.00

캔자스시티 로열스: 2.70

뉴욕 양키스: 2.38

 

 확실한 차이가 느껴진다. 저 9.18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21세기 모든 팀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Clutch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시애틀 팬들은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남을 만한 시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불펜이다. 크리스 플렉센, 로건 길버트를 제외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발진과 달리 이번 시즌 시애틀의 불펜은 리그에서 4번째로 높은 WAR 7.0을 기록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팀이 화이트삭스, 양키스, 템파베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들의 강력함이 확연히 보일 것이다. 또한 이번 시즌 불펜이 기록하고 있는 WAR은 클럽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핵심 자원이였던 켄덜 그레이브맨을 시즌 도중에 휴스턴으로 트레이드하는 일종의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폴 시월드, 드류 스테켄라이더는 시즌 내내 불펜의 버팀목이 되고 있고 케이시 새들러나 앤서니 미세비치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불펜의 강함도 1점차 승부를 가져가는데 있어서 확실한 도움을 준다. 위와 동일한 기간 동안 추출한 데이터에 기반한, 불펜 WAR와 1점차 승부 승률 간의 관계를 나타낸 Scatter Plot을 보면, 위의 사례와 같은 아주 강력한 상관관계는 나오지 않지만 이 경우에서도 상관계수는 0.355라는 꽤 높은 수치가 나온다. 필승조가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 접전을 가져갈 확률도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애틀은 시즌 내내 이러한 '클러치 타선'과 불펜의 힘으로 경쟁력을 보여줬고, 와일드카드라는 대업을 이루기 직전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물론 상당한 운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클러치 스탯은 실제 타격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고, 매 시즌마다 바뀌는 상당히 일관성 없는 스탯이다. 당장 지난 시즌 시애틀의 Clutch 스탯은 2.12, 지지난시즌은 -2.13에 불과했다. 불펜의 경우도 엘리트 투수를 제외하면 매 시즌마다 퍼포먼스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시애틀이 이런 로스터로 내년에도 이런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물으면 필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선발진은 확실한 보강이 필요하고 타선에서도 켈레닉 같은 유망주들의 분발과 추가적인 영입이 요구된다. 하지만 20년이라는 플레이오프 가뭄을 겪고 있는 시애틀 팬들에게는 이런 미래에 대한 걱정은 쓸모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남은 기간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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