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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키커를 1라운드에 뽑냐?' 20년 전 알 데이비스는 달랐다.

NFL

by IN-N-OUT 2021. 9. 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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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랜드 레이더스는 캔자스시티와 붙었던 직전 20경기에서 18번을 졌었기에, 애로우헤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1999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일어났던 대참사는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오클랜드는 치프스의 공격진이 경기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14-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2년차 코치 존 그루덴이 지휘하던 그 레이더스가, 경기 종료 50초 전에 동점을 만들 수 있는 필드골 레인지 안에 들어온 것은 기적적이었다. 그 오클랜드가 필드골을 성공시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연장에서 위닝 필드골을 넣은 것은 '공을 제대로 차지도 못하는 팀'이라는 소리를 듣던 팀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1990년대의 마지막 4시즌 동안 레이더스보다 많은 필드골을 놓친 팀은 없었다. 조 네드니의 위닝샷이 치프스를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시키고, 애로우헤드에서 오클랜드가 10여년 만에 첫 번째 승리를 안겨준 것은 그루덴의 일자리를 보전시켜주었고, 레이더스는 드디어 신뢰할 수 있는 키커를 얻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시즌 막판의 활약이 네드니에게 아무것도 보장해주지는 않았지만, 드래프트가 다가올수록 이 캘리포니아 출신 선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느낌을 가지고, 대서양으로 3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그러고 그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저는 이탈리아에 있었고, 부인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있었죠. 식사 후에 저는 부모님한테 안부 전화를 걸었죠. 마침 드래프트 날이었죠. 약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런 생각이였죠. '누가 17픽으로 키커를 뽑아? 레이더스가 그럴 일은 없을 걸.' 그래서 전 어머니한테 물어봤죠. '근데, 드래프트는 어떻게 됐나요?' 침묵이 흐르더라고요." 네드니의 말이다.

 

 누가 17픽으로 키커를 뽑냐고? 알 데이비스는 그렇게 한다. 데이비스는 아주 많은 방식으로 전통을 거부했고, 2000년 드래프트 17픽으로 플로리다 스테이트 키커 세바스티안 자니코우스키를 지명한 것은 그 중 하나이다. 이는 최근 열린 40번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스페셜 팀 선수를 지명한 유일한 사례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자니코우스키는 레이더스에서 프랜차이즈 기록인 268경기에 출장했고, 리그에서 가장 많이 3점차 이내의 승부를 펼쳤던(22경기) 오클랜드가 필드골 퍼센테이지에서 최하위를 도맡아 차지했었던 4년 간의 악몽을 마감했다.

 

 여러 요인들이 자니코우스키의 역사적인 지명에 기여했다: 특이한 재능에 꽂힌 독단적인 구단주, 수년간의 키커난을 겪으며서 발생한 PTSD,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자니코우스키, 레이더스의 스카우터들이 1라운드 감이라고 평가했던 선수가 16명밖에 없었던 드래프트 상황까지.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Janikowski played a franchise-record 268 games for the Raiders. (Photo by Al Bello/Getty Images)

존 킹던, 전 레이더스 스카우팅 책임자: 96시즌 시작 전에 (오랫동안 레이더스의 키커였었던) 제프 제거를 방출했을 때부터 모든게 시작됐죠. 제프가 다쳤고, 콜 포드가 대체자로 들어와 9개 중 8개를 성공시켰죠. 알(데이비스)은 콜을 다음 시즌까지 데려갔고, 우리가 제프 제거를 방출했을 때부터 키커난은 시작되었죠. 재앙이였어요.

 

마이클 롬바르디, 전 레이더스 프런트: 이름은 까먹었지만, 어쨌든 키커를 한 명 영입했었죠. 하지만 그 선수가 킥을 놓치니깐, 라커룸 분위기가 통째로 흔들리더라고요.

 

빌 솔리데이, 전 레이더스 비트라이터: 레이더스는 키커와는 이상할정도로 연이 없었죠. 1970년대에 조지 블란다는 영웅이였지만, 저는 팀이 그를 버리고 루키를 기용했던 것을 기억해요. 그리고 레이더스는 꽤 괜찮은 활약을 보였던 에롤 만을 쓰면서 슈퍼볼을 가져갔죠. 하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키커들이 알(데이비스)을 미치게 만들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팀 브라운, 레이더스 명예의 전당 리시버: 클러치 상황 때 저희랑 붙는 키커들은 항상 완벽했었던 것 같아요. 턱 룰 게임(역주: 2001 AFC 디비져널 라운드 패츠 - 레이더스 경기)이 생각 나네요. 어떻게 눈발이 그렇게 날리는데 46야드 필드골을 넣는 건가요? 누가 그럴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레이더스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 몇 년 동안 저희가 필드로 달려나가 키커들을 감싸앉았던 기억이 없던 거 같네요.

 

 1990년대 레이더스의 어중간했던 키킹 게임을 비난하는 것은 1998년 그루덴을 고용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던 감독 교체들을 감안하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여기에도 하나의 문제가 있다. 1996시즌 그들은 4승 4패로 시작했지만, 이후 3경기 동안 7점밖에 내지 못했고, 3연패를 기록하며 시즌이 끝났었다. 이 시즌에서 포드는 리그 평균과 비슷한 77%의 성공률을 보였지만, 시즌의 결과를 바꿔 놓은 두 번의 패배에서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템파 원정에서 경기 종료까지 8초를 남긴 동점 상황에서 28야드 필드골을 놓친 포드의 실수는 1승 8패의 벅스에게 연장전 끝에 패배한 오클랜드가 경기 내내 받았던 12개의 페널티와 뼈아픈 인터셉션을 가리기에 충분하였다.

 

 킹던: 템파베이가 상대였죠. 동점이였고요. 상대편 7야드 라인에서 1분 30초 정도 공을 잡고 있었죠. 두 번이나 닐링을 했고요. 무조건 이기는 경기에요. 그가 킥을 놓쳤고, 우리는 연장에서 졌죠.

 

 샘 파머, 전 레이더스 비트라이터: 템파에게 진 경기가 결정적이였죠. 쐐기를 박은겁니다.

 

 경기 후, 포드의 인터뷰: 정말 끔찍하네요.

 

 브라운: 그 경기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지는 않네요. 아마 제 정신 건강을 위해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맨날 했었던 얘기지만, 저는 키커를 싫어해요. 그게 제 논점이에요. 공을 똑바로 차는 것, 딱 하나의 일만 하면 되는데 그걸 제대로 못하나요?

 

 1997시즌 제츠와의 경기에서, 레이더스의 쿼터백 제프 조지는 374 패싱 야드를 기록했고, 인터셉션 없이 3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브라운은 10번의 패스를 받고 153야드를 전진했다. 제임스 제트는 5번의 패스를 잡고 148야드를 전진했다. 나폴레옹 카우프먼은 126 러싱야드를 기록했다. 수비에서 레이더스는 16점만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레이더스는 22-23으로 졌다. 4번의 필드골 미스가 있었는데, 한 번은 블락당한 뒤 터치다운으로 이어졌고, PAT를 놓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했던 루키 스내퍼와 함께 뛰었던 포드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었다. 그 경기는 자니코우스키의 지명을 예견한 여러 문제들이 극단적으로 터져나온 하나의 예시였다.

 

 킹던: 한 시즌(1998)은 필 도슨을 영입했었죠. 그가 연습 막바지에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킥을 시도했었는데 그걸 놓쳤고, 알이 초조해하길래 바로 그를 방출했죠. 그리고 나서 도슨은 20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나가더군요. 그렉 데이비스를 1년 동안 데리고 있기도 했었죠. 마이클 허스티드도 영입했었고요.

 

 리치 개논, 전 레이더스 쿼터백: 마이클 허스티드를 영입했었는데, 그는 다리 힘이 좋았고 템파에서 꽤 성공을 거두었었죠. 그 시즌(1999)을 마무리했을 때, 우리는 풋볼에서 가장 강력한 8승 8패 팀이었죠. 3-4경기는 키커와 스페셜 팀 때문에 내준거 같아요. 그는 짧은 거리의 킥을 놓쳤고, PAT를 놓쳤고, 그냥 못했어요. 존이나 데이비스 씨, 모든 사람들이 화나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허스티드: 저희 팀은 8승 8패를 거두었고, 제가 킥을 놓쳐서 1-2점차로 졌었던 경기가 한 두 경기정도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그 때 저희는 눈이 쏟아지는 덴버에서 경기했었고, 저는 (1분 21초 남은 상황에서) 44야드 킥을 집어넣어서 팀을 역전하게 했지만 제이슨 엘럼이 53야드 킥을 넣어서 동점을 만들고 연장으로 향했죠. 연장에서 개논이 색을 당하면서 펌블을 했고, 다음 플레이에서 마이크 앤더슨(필자 주: 사실 올랜디스 개리이다.) 가 달려서 터치다운을 만들어냈죠. 8승 8패의 결과가 나오니깐 희생양이 필요했던 거였고, 불행하게도 그게 저였던거죠.

 

 그루덴: 많은 키커들이 거쳐갔었죠. 중요한 킥들을 여러 개 놓치기도 했고요. 첫 두 시즌동안 8승 8패를 기록했고, 필드 골 키커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클러치 필드골 몇 개를 득점하기 못하긴 했죠.

 

 롬바르디: 드디어 저희는 감을 잡았고, 조 네드니를 영입했죠.

 

 그루덴: 저와 같은 에이전트를 가지고 있던 조 네드니를 영입했고, 네드니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어요. 그는 덩치가 큰 왼발 키커였고, 터치백을 만들어 냈으며, 롱-레인지 필드골을 득점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치프스를 탈락시키는 득점을 애로우헤드에서 만들어내기도 했죠. 드디어 우리에게도 믿을 만한 키커가 생긴 것 같았죠.

 

 그 시기에, 탤러헤시에 위치한 플로리다 스테잇에서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의 선수가 대학 키커 유망주로써는 전무후무했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세바스티안 자니코우스키는 6-1, 260파운드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돋보였다.

 

 브루스 케브릭, 전 레이더스 스카우터: 스카우터 생활을 하면서, 그 정도로 다리 힘이 강한 선수는 딱 한 명 밖에 보지 못했었고, 그 선수는 미시간 스테잇을 나와서 세인츠에서 오랜 기간 뛰었던 선수였죠. (HOFer 모르텐 앤더슨을 의미)

 

 필 에머리, 탤러해시에 거주했던 전 베어스 지역 스카우터: 그가 공을 차면, '툭'하는 소리가 아니라 '펑'이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나의 폭탄 같다고 해야할까요. 그 친구가 공을 찰 때마다 비정상적인 다리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밖에 없었죠. 전례가 없던 일이였어요. 저는 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이시여, 어떻게 사람이 공을 저렇게 빠르게 차나요?' 그리고 제가 시간 측정을 시작했을 때, 저는 시계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스내퍼가 공을 스냅하고 키커의 발이 공에 닿는, 가장 이상적인 시간은 1.2초에요. 저는 그때 1.12초, 1.14초, 1.15초, 1.13초, 1.11초 같은 기록을 목격했죠. 불쌍한 홀더는 공을 겨우 고정시켰고 그의 발이 도달했죠. 공을 차는게 아니라, 공격하는 수준이였어요.

 

 그러고는 신체 조건을 들여다 봤죠. '이 선수가 축구를 했었다고?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 그 친구의 몸은 크고 두꺼웠죠. 생김새나, 공을 공격하는 자세, 폭발음, 피지컬까지. 제 말은, 당신이 그 친구 근처에 있으면 긴장하게 되고, 그에게서 공격적이면서 남성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겁니다. 바로 알아챌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그 친구는 사람들을 날리기도 하더라고요. 제 말은, 이 선수가 킥 수비를 하더라고요. 공격성, 일반적이지 않은 신체, 폭발력까지 모두 갖췄어요. 몇몇 선수를 부상당하게 하더라고요. 막 눕히고요. 그는 그런 걸 좋아했고, 다른 선수들도 그런 그를 좋아했죠.

 

 케브릭: 컴바인에서 달리지는 않았어요. 키커는 안 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플로리다 스테잇으로 갔고 와이드 리시버 피터 워릭과 같은 날에 시간 측정을 했죠. 비가 엄청 오는 날이여서 우리는 체육관으로 갔고, 피터는 나무 바닥에서는 기록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계속 미끄러졌죠. 우리는 세바스티안의 사이즈를 측정했고, 6013(6-1 그리고 3/8인치), 256 파운드가 나오더라고요. 그러고 그는 40야드를 4.89초에 주파했고, 버티컬 점프 29인치, 브로드 점프 8-5를 기록했어요. 벤치 프레스 하는 키커 본 적 있으세요? 그 친구는 225파운드를 14번 들더라고요. 이러면 이 선수가 어떤 타입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디펜시브 라인맨이죠.

 

 폴 힐리, 자니코우스키의 에이전트: 세바스티안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유망주였죠.

 

 포트, 허스티드와 그렉 데이비스는 레이더스를 떠난 이후 다시는 주전 키커가 되지 못했다. 키커는 원래 큰 비난을 받는 포지션은 아니지만, 이때도 그랬을까? 포드가 템파에서 위닝 샷을 놓친 이후에, 오클랜드 콜리세움의 성난 팬들은 "FORD = Found On Road Dead" 라는 배너를 흔들기도 했었다. 포드의 퍼포먼스는 그 이후 하락했다. 그렉 데이비스는 그를 제치고 주전 키커로 1998 시즌을 시작했다. 버팔로는 포드를 킥오프 전문 키커로 영입했고, 한 달 뒤에 그를 방출했다. 몇 년이 지난 이후, 포드가 뉴스에 다시 등장했을 때 그는 달라져 있었다. 장발과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알아보기 힘들게 변한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안되는 중범죄 죄목으로 기소당해 네바다의 법정에 서 있었다: Sigfried & Roy의 집에 샷건을 발사했기 때문이었는데, 왜냐하면 포드는 그들을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아무도 다치지는 않았다) 판사는 포드가 재판을 받기에는 부적합한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때 코튼 볼에서 7번의 엑스트라 포인트와 1개의 필드골을 득점한 전 USC 경영학과 졸업생은 현재 47살이며, 그의 아버지가 공동 창립했고, 고향인 애리조나에 위치한 Anthen Equity Group에서 일한다. 기업 정보에 따르면 콜은 "St.David 홀딩스와 Enclave Farms hay production 관리 책임자"이다. 풋볼 커리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포드의 아버지인 로저는 그의 아들이 답변을 거부했음을 알리며, 그 이유를 과거의 적대적인 미디어로 들었다.

 

 로저 포드: 콜은 잘해왔었죠. 호감이기도 했고요. 계속 웃는 녀석입니다. 제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는 일주일에 5일을 콜과 함께 농장에서 보내고 있고 그걸 정말로 좋아하죠. 대형 장비들도 많고 800에이커의 농지의 시설을 책임지고 있으며, 이는 그에게 맞는 일로 보입니다. 정말로 좋아하고 있어요. 풋볼 커리어를 돌아 보자면, 콜이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30야드 거리에서 공을 차 넣는 것이였고 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가 레이더스에서의 3번째 시즌을 보낼 때 팬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네요, 저는 팬들이 “FORD: Found On Road Dead” 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배너를 들고 있던게 기억납니다. 템파에서 쉬운 킥을 놓친 이후에, 콜은 저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일종의 PTSD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루덴은 훌륭했어요. 콜을 좋아했고, 잔류를 위해 사이닝 보너스를 오퍼하기도 했지만 콜은 "기대치에 부응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라고 말했죠. 결국 그들은 버팔로로 그를 트레이드 했고 NFL 은퇴 시즌이였던 4년차 시즌을 보낼 수 있었죠. 콜은 정말로 그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포드와 1998시즌 키커 그렉 데이비스는 오클랜드가 2000시즌 드래프트에서의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었을 때 팀에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네드니와 허스테드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한 명은 존중받으며 떠났고, 다른 한 명은 희한한 방식으로 팀에서 나갔다.

 

 허스테드: 조 네드니와 제가 드래프트 이전에 운동을 하면서 걸어나가고 있었는데, 그루덴이 저희들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봐, 너네 둘은 내 선수들이야. 내년에 주전 경쟁하는걸 꼭 보고 싶구만." 그러고 나서 저는 제 와이프와 큰 딸과 함께 Tahoe에 있었죠. 스노우보드를 타고 돌아오는데, 저는 이런 자막을 보고 말았죠. "오클랜드 레이더스, 17픽, 세바스티안 자니코우스키, 플로리다 스테잇 키커" 그걸 보고 와이프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캐스? 내년에 우리는 오클랜드로 가지 않을거야."

 

 네드니: 허스테드는 이런 생각이였죠. "몰라, 그냥 나갈거야." 저는 상황을 본 뒤에 계약을 맺고, 경기장에 나갔죠. 만약 자니코우스키라는 친구가 엄청난 거물이라면 제가 필드 위에서 그 친구랑 경쟁을 하는 거 자체가 저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발상의 전환이 저한테 일어난거고 제가 여지껏 느껴보지 못했던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허스테드: 자니코우스키는 왼발이고, 네드니도 왼발이였기에 그들은 조를 남겨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수도 있었죠. 저는 방출을 요구했지만 팀은 그럴 생각이 없더라고요. 라커룸에 들어갔더니, 제가 여전히 로스터에 있었는데도 이름이 없는 걸 확인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사할 때 쓰는 종이박스를 잡아서 라커룸 정중앙에 제 라커를 따로 만들었죠. 그 날 그루덴이 들어와서 그 광경을 봤죠.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네드니: 제가 방출되었을 때, 알 데이비스가 저한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말하더라고요, "이 말은 하고 싶네, 자네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지만, 묵묵히 버텨냈고 그거에 대해서 감사 표시를 하고 싶어. 너는 항상 레이더일거야." 저는 그냥 이렇게 말했어요. "데이비스 씨, 정말 감사합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뭔 소리 하는거야, 전화 건 사람이 진짜 알 데이비스겠냐?" 제가 전화를 끊고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와,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그리고 마크 데이비스나 모든 레이더스 구성원들이 저에게 정말, 정말 좋은 대우를 해줬어요. 저는 레이더스를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항상 그럴거에요.

 

 NFL 유명 선수였던 레 캐루스와 레이 루이스가 2000년 초반 살인 혐의로 기소되자, 커미셔너 폴 타글리아부에는 팀들에게 선수 평가 과정에서 인성 검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자니코우스키가 했던 미숙한 행동들은 대부분 일종의 허세로 취급할만 했지만, 모국인 폴란드로 강제추방될 수도 있었던 행위들이였기에 드래프트 이전에는 심각한 논의들이 오고 갔었다. 하지만 항상 리그의 흐름에 맞서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던 NFL 구단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롬바르디: 알은 뭐 거의 신경쓰지도 않더라고요.

 

 케브릭: 세 명의 스카우터가 자니코우스키를 관찰했고 저희는 2라운드 등급을 매겼죠. 1라운드급을 주기는 좀 그랬었죠. 경기장 외부에서 생긴 일 때문에 체포되기도 했고, 추방될 수도 있었거든요. 실제로 저는 플로리다 스테잇에서 그에 대한 리포트를 찾기도 했어요.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있더라고요: 거칠고, 경쟁적이며, 압박감을 즐김;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5년째 거주중이고, 아버지는 미국에 거주하지만 어머니는 폴란드에서 살고 있음; 술 마시고 파티하는걸 좋아함; 바에서 남자 치어리더를 폭행했고, 기소되지는 않았음; 학교나 수업에 가는걸 좋아하지 않음; 정학 전적이 있음. 계속 그런 얘기들이죠.

 

 밥 캐술로, 전 레이더스 스페셜팀 코치: 제가 조지아 텍에 있을 때 자니코우스키를 상대한 적이 있었죠. 데이비스 씨가 그에 대해서 심도 깊은 질문을 하길래, 저는 그 친구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죠. 제 말은, 눈을 감고 그가 공 차는 소리를 들어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플로리다 스테잇으로 보냈고, 제가 거기 있던 날 자니코우스키가 없더라고요. 뭘 해야 될 지 몰랐었죠. 긴 얘기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저는 Emperor’s palace로 갔는데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죠. 바비 보우덴 (역주: 당시 플로리다 스테잇 감독이자, 대학 풋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감독 중 한 명)을 만났거든요. 세바스티안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 하더라고요. 이런식으로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저희는 그가 알아서 하게 놔둡니다. 지금까지 팀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죠. 계속해서 그를 관찰하시겠지만, 결론은 당신이 지금까지 본 것과 똑같을 거에요 - 그정도로 좋은 선수입니다." 알 데이비스를 만나서 바비 보우덴의 얘기를 들려줬었죠. 그러더니 그가 묻더군요. "자니코우스키는 어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보지는 못했어요. 거기 없더라고요." 알은 다시 물었죠. "그게 큰 문제인가?" 다시 답했죠. "딱히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마 수업 듣고 있었겠죠." 지금 와서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알죠. 저는 그 친구를 원했거든요.

 

 전문가들이 예상한 자니코우스키의 예상 드래프트 순번은 빨라야 1라운드 후반대였다. Pro Football Weekly의 조엘 부크범은 레이더스 행을 예상했으나, 1라운드 이후였다. 올랜도 센티넬 칼럼니스트 제리 그린은 자니코우스키를 "완벽한 레이더스 타입의 선수"라고 부르며 레이더스가 그를 지명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ESPN의 멜 카이퍼 주니어는 자니코우스키의 1라운드 지명을 예측한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31번 픽으로 램스행을 예상했다. 알 데이비스와 친분이 있었던 보스턴 글러브의 윌 맥도너는 레이더스가 1라운드에 줄리언 피터슨을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따. SI의 폴 지머맨은 존 에이브러햄이 오클랜드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술로: 드래프트 데이가 다가올 수록 데이비스 씨가 자니코우스키를 1라운드 픽으로 지명할 것이 명백해졌죠. 갑자기, 사람들이 저를 회의실에서 무시하더라고요. 저는 2월 팀에 들어왔고, 그때가 3월 말이었는데 저는 거기 앉아있기만 해도 헤드 코치가 눈을 치켜뜨면서 "자네 뭐하는 건가?"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 말이죠.

 

 케브릭: 다른 팀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부서원들과 대화를 해봤죠. "여기는 364일 동안은 미국에서 최고의 일터일거야. 알이 우리가 뭘 하든 신경쓰지 않거든. 하지만 드래프트 첫 날인 365일째가 되면, 미친 듯이 짜증날걸." 왜냐면 알이 이렇게 말할 거라는걸 알고 있었거든요. "자네들이 옳다는 걸 알고, 무슨 말하는지도 알겠어. 근데 생각해보라고, 이 친구는 컴바인에서 가장 빠른 선수잖아. 어떻게 지나치겠어." 이런 걸 계속 반복하는거에요. 자니코우스키는 정말 독특한 선수였고 알이 결국 옳았음이 밝혀지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2시즌 연속 8승 8패에 머물렀고 필드 플레이어를 지명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었죠.

 

 그루덴: 저희는 션 알렉산더를 염두해두고 있었죠. 나폴레옹 (카우프만)은 갑자기 은퇴하더라고요. 그리고 팀에 도움이 될 만한 빅 사이즈 리시버인 실베스터 모리스도 고려 대상이였어요. 근데 갑자기, 데이비스 씨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버치, 나를 한 번 믿어봐. 내가 이 바닥에 있던게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자니코우스키는 20년 동안 득점을 챙겨줄 수 있을거야."

 

 카술로: 베어스가 (자니코우스키를) 지명해서 그를 위한 잔치를 열어줄 수도 있었겠죠. 저희 앞에 있었는데 브라이언 얼래커를 지명했었죠. 하지만 2라운드 첫 번째 픽으로 세바스티안을 뽑을 생각이였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1라운드에서 우리가 뽑지 못한다면, 베어스가 그를 2라운드에서 가져갔을 겁니다.

 

 빌 리스, 전직 베어스 대학 스카우터: 1라운드에서는 딱히 뭘 할 생각은 없었지만, 필 에머리가 플로리다 지역을 스카우팅했고 자니코우스키를 상당히 고평가했었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래프트 룸에서 그의 가치는 확연히 올라갔죠. 그 사람 말이 맞더라고요.

 

 에머리: (전 베어스 GM) 마크 하틀리도 이 이야기에 넣어야겠네요. 저희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고, 항상 저를 필리라고 불렀었죠. 그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봐 필리, 2라운드 픽은 어때?" "무조건이죠." 제가 대답했죠. 저를 보더니 본인 특유의 웃는 방식으로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서요. "구단주한테는 말하면 안되지만, 나도 마찬가지 생각일세!" 저는 빌 리스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 느꼈어요. "혹시 둘이 미리 짜고 그 친구를 2라운드에 뽑을 모의를 한건가?" 그리고 하틀리가 말했죠. "OK, 할 수는 있는데 문제가 있어. 품성이라고 해야 되나. 짚고 넘어가야 할게 많아." 그렇긴 했거든요. "우리는 여기서 그를 지명할거야." 

 

 힐리: 저는 시카고가 그를 데려갈 줄 알았어요. 아실까 모르겠는데, 바르샤바 다음으로 세계에서 폴란드인이 많이 사는 동네가 시카고잖아요. 게다가 키커도 필요하니깐 그 팀이 결단을 내릴 줄 알았죠.

 

 에머리: 전 다시 들어와서 마크에게 자니코우스키 관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봤죠. 그는 순조롭다고 대답했어요. "그 친구를 시카고에 있는 폴란드 마을로 데려갔었어.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시장을 맞이한 분위기더라고. 사람들은 어울려 다니면서 식사를 했고, 아마 맥주를 마셨을 수도 있지." 그 사람들은 마크한테 이런 말을 했더군요. "당신 정말 대단한데. 그 친구를 뽑으면 우리가 당신을 보호해주고, 그 친구도 지켜줄게." 저는 마크한테 이렇게 말했죠. "지금 그 사람들이 그 친구를 폴란드 클럽에서 찾아내서, 그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는거죠?" "그럼, 필리.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거지. 확실한건,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한다는거야." 그가 말하더군요. 

 

 마크는 결심했었어요. 계속 대화를 나눴지만, 드래프트 날 마크가 저를 보더니 말하더군요. "필리, 확실해?" "그럼요, 마크. 그를 데려오자고요." 그리고 알 데이비스가 그를 지명했을 때, 마크는 저를 보고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아, 젠장, 끝났어. 어떤 수를 더 둘 수 있었겠어? 알 데이비스가 '알 데이비스' 한건데."

 

 카술로: 2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는데, 줄리언 피터슨과 세바스티안 자니코우스키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죠. 여기서 모순이 생기는거죠: 저는 미시간 스테잇에서 일하다가 오클랜드로 왔고, 줄리안 피터슨은 미시간 스테잇에서 뛰었어요. 줄리언 피터슨보다 훌륭한 사람은 없을 거에요. 데이비스가 저를 미팅룸에서 취조했었는데 줄리언 피터슨에 대한 칭찬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가 묻더라고요. "그럼, 줄리언 피터슨을 뽑으면 안되는건가?" 제가 대답했죠. "데이비스 씨,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선 픽을 가지고 있던 나이너스가 피터슨을 지명했고, 그때가 자니코우스키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죠.

 

 그루덴: 알은 모든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줬어요. 그의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요.

 

 롬바르디: 줄리언 피터슨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어요. 델타 오닐은 좀 선호했었죠. 알이 좋아하기도 했고요. 킹던 같은 스카우터들은 얼래커를 선호했어요. 전체 9번으로 나가더군요. 알은 애리조나 출신의 빠른 러닝백인 트렁 캐니더트도 좋아했죠. 그루덴은 확실히 실베스터 모리스를 지명했을 거지만, 그 시점에서 남아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어요.

 

 케브릭: 아직도 노트가 있어요. 스카우트들이 생각한 드래프트 전략은 이랬었죠: 저희는 라바 애링턴을 1순위로 두었고, 그리고 코트니 브라운, 코리 사이먼, 피터 워릭, 브라이언 얼래커를 그 다음에 놨었죠. 이게 저희가 알에게 얘기한 거고요. 얼래커 다음으로 저희가 1라운드급이라는 평가를 내린건 크리스 새뮤얼스, 플라시코 뷰러스, 델타 오닐, 자말 루이스, 라샤드 앤더슨, 션 알렉산더, 크리스 매킨토시, 션 엘리스, 롭 모리스, 론 데인 그리고 실베스터 모리스였어요. 확실한 1라운드 급으로 본게 이 16명이었죠. 줄리언 피터슨은 토마스 존스, 에릭 플랑너스, 알 제이 소와드와 함께 Top 20에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존 에이브러험을 선호했었죠.

 

 킹던: 훌륭한 스카우터이자 처음으로 bump-and-run을 사용한 코너백인 켄트 매클러헌과 대화했던게 기억나네요. 저는 켄트한테 이렇게 말했죠. "만약 올해 드래프트에서, 작년에 팀에 있었다면 4승을 더 안겨줄 수 있었던 선수를 지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친구를 뽑으실 거에요?"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지금 농담하는겁니까?" 저희가 그 전 시즌에 확실한 필드골을 놓쳐서 4경기를 졌거든요. 저는 상황이 맘에 들었어요.

 

 에이미 트래스크, 전직 레이더스 임원: 저희는 결단을 내렸고, 꽤 많은 사람들 - 코치나, 선수, 직원, 스카우터들 - 이 저한테 이런 선택에 대해 불평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그들은 이 지명을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세바스티안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팀에 기여하고, 키커와 팀메이트로써 최고의 선수였음이 밝혀지고 나자 그 사람들은 그런 경멸감을 싹 잊고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더군요. "정말 잘 뽑은거 같지 않아요?"

 

s)힐리: 브루스 앨런은 그 당시 레이더스에서 계약 업무 담당이였고 드래프트 이후의 첫 번째 미팅에서, 우리는 댈러스의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죠. 저는 잭슨빌에 살고 있었고 브루스는 오클랜드에 있었으니 딱 중간지점이였거든요. 세바스티안은 그 전날 밤에 외출했었는데 브루스가 저한테 세바스티안이 그날 밤 텔러해시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말해줬던게 기억나네요. 브루스는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로 출발하기 직전 그 소식을 들었죠.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었죠. 어쨌든 우리는 근처 호텔로 가서 라운지에 있던 스포츠 바로 향했죠. 여러 대의 TV들이 켜져 있었는데 제 고객에 대한 얘기들을 하더라고요. 브루스와 저 둘 뿐이었는데, TV를 보니 번호인지 뭔지를 들고 있는 세바스티안의 최근 머그샷이 나오고, 화면 아래에는 자막이 나가더라고요. 말할 필요도 없이 계약은 한 번에 끝나지 못했죠. 엄밀히 말해서, 세바스티안은 배심원 평결까지 받긴 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이건 적어주세요. 그리고 세바스티안 같이 충성심이 높은 선수도 찾기 힘들겁니다. 여러 군데에서 사고를 몇 번 치곤 했지만, 19년 동안 한 경기도 출장정지 당하지 않았거든요.

 

 킹던: 세바스티안이 왔을 때 그는 음, 성숙하지 못했죠. 딱히 할 말이 있을까요?

 

 애덤 트루, 전 레이더스 스내퍼: 팀 미팅 45분 전에 스페셜 팀 미팅이 있죠. 세바스티안은 지방시인지 뭔지 향수 냄새를 풍기면서 오더군요. 항상 향기가 좋았어요. 그 향수를 뿌렸을 때 그가 전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기 힘들더라고요.

 

 그루덴: 루키 시즌때 뉴올리언스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첫 포제션에서 우리는 3-4개의 퍼스트 다운을 만들어냈고 50야드정도의 필드 골을 차기 위해 유닛을 슈퍼돔의 필드로 내보냈죠. (실제로는 49야드) 자니코우스키는 경기 전날 밤 통금을 어겼고, 저는 화가 났었기 때문에 그냥 소리질렀죠. "필드 골!" 그리고 스페셜 팀 코치인 밥 코술로가 이런 말을 했던게 기억 나네요. "새벽 4시까지 밖에 있다 왔어요! 절대 못 넣을걸요." 다시 한 번, "필드 골!"이라고 했죠. 저는 그에게 욕을 퍼붓기 위해 내심 필드 골을 놓치는 걸 바라고 있었죠. 근데 20야드 뒤에서 차도 넣을 정도로 여유롭게 성공시키길래 저는 그를 껴안고 이렇게 말했죠. "임마, 사랑해!"

 

 킹던: 세바스티안은 셰인 레클러랑 같이 살게 되었고 그 이후 많이 안정된 생활을 했죠. 또 그가 결혼을 한 게, 그가 풋볼에 집중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케브릭: 저는 셰인이 텍사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알았었는데, 제가 말했죠. "셰인이 세바스티안이랑 방을 같이 쓸 지 지켜보죠." 셰인은 정반대의 사람이거든요. 그(자니코우스키)가 시즌 막판에 저한테 와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2년차에는 안 할겁니다. 도저히 못하겠어요. 맨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제가 그를 계속 재워야만 했어요." 우리는 그를 철 들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더니 사람이 바뀌더군요.

 

 

 그루덴: 전 레클러랑 자니코우스키를 Beavis and Butt-head라고 불렀죠. 그 친구들은 만사를 즐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고 제 속은 뒤집어졌죠. 우리가 덴버에서 덴버 브롱코스와 경기했을 때가 더욱 그랬어요. 이 친구들은 고도 얘기 밖에 안하더라고요. 레클러는 "펀트하는게 너무 기대되는데요. 펀트해서 이 망할 경기장을 넘겨버릴겁니다." 하고, 자니코우스키는 "90야드 필드골을 넣을 겁니다." 이러더라고요. 전 그냥 "닥쳐"라고 말했죠. 그리고는 경기 전 웜업을 나가는데 브롱코스 선수 5명이 저한테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 두 명이 상대 팀 선수들 상대로 공을 차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 때문에 큰일 날 뻔 했어요.

 

 개넌: 그루덴은 그 둘의 라커를 제 옆에 붙여놨죠. 그 친구들이랑 많이 연습했고, 규율이나, 지각하지 않기, 프로가 되는 법, 다리 관리, 자기 관리 같은 얘기들을 계속했죠. 전 특별한 행동을 한 건 아니였지만, 그 친구들은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었기에 하나의 과제 같은 느낌으로 임했죠. 제가 떠나고 나서도 그 친구들이 이룬 업적을 보면 자랑스럽죠. 훌륭한 프로들이었어요.

 

 카술로: 저는 고등학교에서도 코칭을 해봤고, 디비전 I에서 18년, NFL에서 10년 동안 코칭을 해봤는데 이런 교훈을 얻었어요: 어린 친구들은 언젠가는 철이 든다는 것. 그들 스스로 느끼거든요. 몇몇은 18살 때 그런 시기가 오고, 누구는 22살, 누구는 25살때 오기도 하죠. 하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됩니다. 자니코우스키의 경우, 2년차의 2/3이 지나가던 시점에 철이 들었고, 그제서야 진정한 프로 풋볼 선수가 되었죠.

 

 자니코우스키는 NFL에서 뛴 18번의 시즌 동안 53.3밀리언을 벌었고, 키커로는 가장 많은 돈을 번 선수가 되었다. 5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찬 필드골을 58번 성공시켰고, 이는 NFL 최고 기록이다. 자니코우스키가 뛴 17시즌 동안 레이더스의 50야드 이내 필드골 성공률은 11위였다. 1996-99 시즌 동안 그들은 최하위였다. 자니코우스키 시대 동안 레이더스는 전체 필드골 성공률에서 27위에 머물렀는데, 오클랜드가 5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리그에서 가장 많은 횟수인 104번을 시도한 것이 하나의 요인이다. 킥오프 라인이 30에서 35야드로 옮겨지기 전인 2000시즌부터 10년 동안 레이더스는 NFL에서 킥오프 터치백 비율이 가장 높은 팀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니코우스키의 등장은 오클랜드의 키킹 게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네드니: 우리가 그를 지명한 이후, 나파에 있던 훈련장 한쪽에서는 필드골을 누가 더 멀리 차냐라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었죠. "너가 할 수 있는 만큼 차도, 내가 더 멀리 찰 거야. 얼만큼 뒤로 갈 수 있나 보자고." 저는 68야드에서 넣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그가 저를 쳐다보더니 75야드까지 물러나더군요. 놓치긴 했지만, 공은 골대의 중앙 높이까지 간 뒤에 벗어나더라고요. 제가 그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놈이랑은 못 비비겠구만." 이었어요.

 

 킹던: 우리가 2009년 12월 클리블랜드에서 경기할 때였죠. 시작할 때 기온은 34도(영상 1도)였고,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30도(영하 1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죠.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그라운드는 축축했죠. 세바스티안은 1쿼터 마지막에 61야드짜리 필드골을 넣더라고요. 제프 제거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낸 풋볼 역사상 최고의 킥을 본 것 같다고 말했죠. 세바스티안은 그정도로 뛰어났죠.

 

 그루덴: 모든 전문가들이 이 선택을 비난하고 키커를 1라운드에 뽑은 것에 대해 저주를 내렸죠.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도 않았었고 우리가 필드골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결국, 타이트한 풋볼 경기를 이기는게 중요하니까요. 알은 이런 선택을 내릴 혜안이 있었고 예전에도 스페셜 팀 선수를 지목한 적이 있었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죠. 분석가들을 신경쓰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선택을 내렸고, 5라운드에서는 셰인 레클러를 지명했죠. 두 명 다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는 선수들이잖아요.

 

 출처: The Athletic, <‘Who’s going to pick a kicker with the 17th pick?’ 20 years ago, the Raiders 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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